새해에 들어서 이제까지 내가 가진 신앙을 뒤돌아보고 하나님께 감사함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모든 것을 가지신 하나님. 그 하나님을 앙망하고 하나님께 맡기는 삶에 대하여 간증의 공간을 마련하여 보려한다.
난 세상적인 면에서 경제적으로 철저히 망하여 절망적인 형편에서 2005년 4월 13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라는 말씀을 마음으로 받아들이면서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죄 사함을 받았다. 외형적인 큰 변화는 하루 담배 3갑 정도 피우던 나로선 내 의지로는 도저히 끊어지지 않던 골초였는데 하나님의 은혜로 자연스럽게 담배를 피우지 않게 된 것이다.
요한복음 제3장 14절-21절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그리고 그 후에 교회의 인도로 신앙에 대한 양육을 받음으로 내 생활은 하나님이 책임지고 이끄시고 있다. 우리는 평소 자기가 주인인 삶을 살고 있다. 과연 신앙은 나의 열심과 나의 노력으로 소망을 이루는 세계인가? 또 그 대상이 과연 누구란 말인가? 나의 관점, 나의 판단으로 이해가 되는 세계일까? 결코 우리가 알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그저 받아들이는 세계이다. 내가 부인되고 내려놓아야 보이고 느껴지는 세계이다.
나는 가끔 하나님의 종으로부터 나를 부인하고 하나님이 하시는 세계에 대하여 양육을 받으면서 나를 내려놓고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세계로 인도함을 받는 귀한 시간을 갖는다. 그런데도 자주 사단에게 마음을 내어주어 내가 살아나는, 내가 주인이 되는 모습이 나타나는데 내가 하려는 의지가 나타나면서 신앙이 힘든 때가 많았다.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오직 성경 은혜 믿음으로 옮겨지면 내 생각이라는 데서 벗어나게 된다.
결단코 하나님의 세계는 우리가 생각고 상상할 수 있는 세계가 아니다. 성경에서 살펴보자. 성경의 처음인 창세기부터 도저히 이해가 되는 세계가 아니다. 세상을 창조하셨고 그리고 인간을 만드신 분이 하나님, 그 세계를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그저 받아들여야 하는 세계이다. 하나님은 이미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다. 하나님의 세계는 시작이요 끝인 세계이고 우린 그 일부분인 순간에 살고 있음에도 감각하지 못하는 아무것도 모르는 세계이다.
이스라엘에서 선교 하고 있는 나의 사위의 말에 따르면 히브리어 성경에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가나안을 주리라고 미래로 약속을 하신 것이 아니라 이미 주었다고 과거완료로 되어 있다고 했다. 로마서 제3장 23장-24장을 보아도 분명하게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고 가르쳐 주고 있는 것처럼 이미 우린 의로운 자의 위치에 있다. 이미 이루어 놓으신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면 의로운 자이고, 그대로 믿는 것이 참 그리스도인이요 그저 은혜를 입는 것이다.
다윗의 사람들이 여부스 성을 공격할 때 오직 다윗의 말을 믿고 수구로 올라갔고, 하나님의 약속대로 가나안을 얻을 수 있었다. 이처럼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앞으로 나아갈 때 이미 준비해두신 것을 볼 수 있다는 소망을 가지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임을 굳이 더 설명할 필요가 없다. 우린 피조물이기에 스스로 할 것이 없다. 다시 말해 내가 부인되어야 하는 자임을 발견하면 그래서 모든 것이 하나님이 하신 것이란 걸 발견하면 나는 아무것도 할 수없는 자임을 자연스럽게 알게 되고 은혜를 입는 위치로 옮겨지게 된다.
갈라디아서 제3장 20절에서 말씀하는 것처럼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으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이런 말씀을 나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믿을 때 내 삶은 달라지고 성령의 인도를 받는 복되고 은혜로운 위치에 있는 자기를 발견하게 된다. 이미 이루어 놓으신 예수님이 이끌고 있는 세계를 맛보고 기쁨과 희열을 느끼게 된다. 이런 사연이 나의 신앙이 되었고 나의 생활이고 삶이다.
성경 말씀을 읽고 또 받아들이면서 진정 이루어 놓으신 하나님의 세계를 보면서 얼마나 소망스러운지! 여기서 아주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창세기에 아담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그런데 사단의 유혹에 넘어가 선악과를 따 먹음으로 하나님과 영적으로 단절된 죽은 자가 되었다. 나와 상관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어긴 아담의 후손이기에 죄인으로 태어났다는 것이다.
이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성경 말씀에 사단의 유혹에 넘어간 아담의 후손으로 우리는 우리가 선택 선택할 수 없는 그저 죄인이라고 말씀으로 증거하고 있다. 하나님은 죄인과 같이 하지 않는다고 말씀이 증거하고 있는데 죄인인 자가 자신의 행위로 하나님께 다가가겠다. 하니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씻기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피 흘리시고 돌아가시고 그 후 3일 만에 부활하신 사실을 성경은 말하고 있다.
요한복음 제3장 16절 말씀에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죄 사함은 결코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우리의 행위인 기도나 다른 어떠한 행위로도 죄를 사할 수는 없다. 예수님은 이천년 전에 이미 세상 죄를 지고 죄의 대속물로 죽으시고 또 우리를 위해 부활하신 영원한 은혜의 세계인데 그 세계에 우리가 속해 있는 것이다.
모든 면에서 앞으로 될 것이다, 할 것이다가 아니고 이미 이루어 놓으신 것을 믿고 받아들이기만 하면 은혜를 입게 되어있다. 오직 예수님의 피 만이 죄를 사하는 능력이 있는 것이다. 신앙은 오직 예수님께서 이미 이루신 세상. 이미 모든 죄를 씻은 사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시작하여야 한다.
이사야 53절 4절-6절을 보면 시간적으로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시기 전 약700년 전에 말씀인데 4절-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달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5절-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6절-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갈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하나님의 시작과 끝이라 항상 현재의 세계이고 믿음으로 우리는 은혜 속에 살고 있다. 이 말씀을 믿는 자는 모두가 의인인 것이다.
다스림을 받는 것이 은혜이고 복되다. 자신의 모습을 보지 못하고 자신이 왕이 되면 타락이다. 다스림을 받지 못함이 불행이다. 나의 빈 공간을 채우는데 하나님으로 채우느냐 자기 욕망으로 채우느냐에 따라 나의 값어치가 달라진다. 내가 할 수 없을 때 하나님이 하신다. 종의 위치에 있어야 한다. 종은 자기 옳음이 없다. 주님이 나의 주인인 삶이어야 은혜를 입는 위치이다. 자기중심적인 사고에서 벗어나야 마음이 주님과 하나가 되면 복되고 귀하다.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가지고 누릴 때 하나님을 잃어버리고 만다. 우리의 소원은 복음이요 예수님과 하나가 되어야 하고 하나님의 종으로부터 인도를 받는 것으로 복음으로 무장된 삶이어야 한다. 믿음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대속하셔서 십자가에 돌아가시는 것을 믿는 것이다. 즉 아담의 영역에서 그리스도의 영역으로 옮기어진 것이다.
이제 우리 모두 아담 안에서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기로 선택한 사람만 구원을 얻은 신분으로 바뀐다. 죄로부터 벗어나 사는 삶. 죄에 대해 죄 된 자신을 장사 지내는 것이다 그러나 죽음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야 한다.
“내가 네 허물을 빽빽한 구름의 사라짐 같이, 네 죄를 안개의 사라짐 같이 도말(塗抹:피를 발라 죄를 완전히 없애버리다)하였으니 너는 내게 돌아오라, 내가 너를 구속(救贖:건져 내기 위하여 값을 치르다)하였음이라.” <이사야 44장 22절>
우리가 온전하게 된 형편을 보고 믿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믿음으로 옮기는 것이다. 깨끗하게 된 것을 보고 믿는 것이 아니라 깨끗하게 하셨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믿음입니다. 끝으로 내 옳음을 부인하는 마음을, 성경이 내 마음의 기준이 되길 간절히 기원해 본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함으로 마무리 하며 모든 사람이 믿음으로 구원의 축복이 있길 기원한다. <저작권자 ⓒ 다경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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