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만든 김치랑 장아찌하고 울 엄마표 전통 간장 손된장이 택배로 왔다
텃밭에서 햇빛 오래 보게 천천히 키운 열무 좀 쓴맛이 나는데 보약이 될 것이니 가까이 사는 네 작은 딸네도 좀 덜어 주고 미국서 온 네 큰 딸네도 많이 먹여라
아흔 바라보는 아버지 키가 많이 줄고 한쪽 어깨가 내려앉으셨던데 머리카락 희끗희끗한 딸 먹이겠다고 돋보기 아래로 김치 담그시는 모습 사진처럼 내 가슴에 찍히고 보인다
아이들과 몇 번을 다녀오려 전화를 넣었지만 코로나가 설치니 오고 가지 말자꾸나 염병이 돌 때는 죽은 듯이 엎드려야 사는 길이다 올해는 친정 한 번을 못 가게 지키셨다
솜씨 좋은 내 어머니 팔다리가 다 허물어져 젊어서 부엌일 잘 모르던 무딘 아버지 손 빌려 열무김치 열무 물김치 마늘장아찌 오이장아찌 익힌 나물 탯줄처럼 꽁꽁 야물게 묶여 온 걸 보니 아버지한테 날아갔을 어머니 잔소리 몇 가닥이 택배 상자 푸는 순간 쏟아져 나뒹군다
열무는 너무 오래 절이면 쓴맛이 난다고 양념을 바를 땐 살살 아기 다루듯 해야 한다고 고맙다는 말보다 눈물이 앞선다 이렇게 살아보는 일도 일장춘몽이지만 100세를 채워 살다 가시기를.
(2020년 9월 8일 택배를 받고) <저작권자 ⓒ 다경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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