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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관 칼럼]언론의 끝없는 타락!

이 관 | 기사입력 2016/11/19 [03:53]

[이관 칼럼]언론의 끝없는 타락!

이 관 | 입력 : 2016/11/19 [03:53]
▲ 이 관 칼럼    

초헌법적인 사고의 발상을 거리낌 없이 들어내 놓고 야권에 동조하여 대한민국의 헌법에 명시된 대통령의 권한에 대하여 임의로 제한하는 기사를 자랑인 듯 경쟁하여 싣고 있는 신문이나 또 방송에서마저 사회적 기본질서 포기로 인한 헌법훼손에 아무런 대책 없는 방영이 숱한 낱말들로 묘사하는 자유대한민주공화국의 언론의 자세를 두고 과연 그런 분별없는 표현이 언론의 자유라고 한다면 대한민국 언론은 국치(國恥)의 표상(表象)임을 스스로 자인하는 무지(無知)의 떼거리인 것이다.

 

매일 읽어보는 지면의 수준은 여전히 아전인수(我田引水)식 기사에 사설까지 정의(正意)가 포기되고 있는 내용이어서 이것이 언론이라고 하는 존재(수준)인가? 하고 회의(懷疑)를 금(禁)치 못한다.

 

신문이 국민의 알 권리에 충실히 한다면서 거짓되고 무지(無知)에 따른 허황된 기사를 남발한다면 정론직필을 핑계하여 도리어 또 다른 권력기관임을 자처하는 처사인줄 모르지는 않을 텐데 특히 악법은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이상한 기류에 편승하여 대한민국의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는데 일조(一助)를 하고 있다면 국가에 대한 역적질이요 반역행위임을 자각하지 못하는 것일까? 안 하는 것일까? 무책임의 극치다.

 

위와 같은 사실에 계(係)를 같이하는 언론의 특성인 지도층이라는 식자(識者)분들에게 인지된 상황들이 “절대권위 주위”에서 나타나고 있는 어처구니없는 국정농간에 절치부심(切齒腐心)의 심정이라 하더라도 어떻게 허무맹랑(虛無孟浪)의 주장을 아무 거리낌 없이 펼침으로 스스로 자기의 존재가치를 부각과 동시 부인하는 자기모순과 구조적 자만(自慢)에 예속됨을 인지하지 못함에서 나타나는 사회정의와도 동 떨어진 아집에서 개선의 여지도 없는 에고이즘의 극치로 달리고 있다.

 

그러면서 역으로 상대에겐 불통이라고 적반하장(賊反荷杖)이다. 냉정하게 지난 역대정권과 비교하여 현 정권만큼 부조리와 담을 쌓으려고 노력한 정권이 있었는가?

 

그러한 정부에서 국민적 기대를 저버린 권력유착의 행태(최순실 사태)가 나타남으로 실망에 의한 분노를 터트릴 수밖에 없는 국민적 함성이 도출된 경우가 되었지만 야권의 주장처럼 하야, 혹은 탄핵을 입에 담을 정도로 국정을 파탄에 빠트렸냐는 보는 관점에 따라 엄청난 괘리가 있음을 언론이 모르지는 않을 텐데 언론이 앞장서서 국민들의 감성에 호소하는 선동의 앞잡이 노릇을 하고 있다는 점은 정녕 대한민국의 언론일까? 회의(懷疑)를 가질 수밖에 없다.

 

아무리 실망감이 크다 하여 남, 북이 대치상황이고 “북의 5차 핵실험과 장거리미사일 발사시험” 등 국가안보에 적신호가 켜진 위기상황을 국민모두 혼연일체로 대비책을 마련해야 하는 현실에서 불미스러운 내치의 문제를 걸고넘어지려는 야권의 술수에 희롱당하는 언론으로 간주하여 좋게 여겨도 방종이고 반면으로 야권의 앞잡이를 자청한 언론의 사회전반에 걸쳐 군림태도가 나라사랑의 모습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 국민정서상 최고의 위험수위에 도달해 있다.

 

외람되지만 지난 4월에 “과거를 제대로 된 배움의 장으로” 란 명제로 글을 올린 내용을 일부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북은 핵을 개발한 적도 없고, 개발할 능력도 없다. 그래서 대북지원금이 핵개발로 악용된다는 얘기는 터무니없는 유언비어다. 내가 책임지겠다. 15대 김대중 대통령께서 하신 말씀이었다.

 

지금으로 보면 정말 대단한 오판이고 반역으로 주워 담을 수 없는 말씀이었기에 국가의 테두리인 안보는 아무리 강조하고 또 강조해도 만용이나 남용이 아닌 전체 국민들의 절대적 값어치의 의식구조로 자리 잡아 맹주가 되는 살아있는 교훈으로 삼고 싶다고 서술했다. 야당의 과거모습이다. 자칫 지금의 잣대로 보면 국가에 역적질의 본상이요 부관참시의 수준이다. 그러나 어느 언론이 과거 대통령에 대하여 비난하는 부분을 찾아볼 수 없다. 우린 비싼 대가(代價)를 준 교훈적 값어치로 수용한 것이다.

 

이념이 골치걸이로 변하는 과정은 자칫 자기정당성에 노예가 되어서 때론 불의에 매몰되는 순간까지도 자기의 위치를 의식하지 못한다는 곳의 중심에 언론이 있다면 누가 채찍을 들어야 할까!

 

이제 현직대통령에 대한 특검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당리당략이 아니라 절대정의에 입각한 조사가 이루어져야 한다. 미리 예측된 범죄에 껴 맞추는 조사를 원하는 야당 요구가 두렵다.

 

언론이 어느 때가 되어야 진정으로 객관적 위치에서 판단하고 정론직필의 제 기능을 찾게 될까? 앞날이 요원하게 느껴지는 아픔이 있다.

진실이 규명 될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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