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은 병원을 만들지만, 좋은 병원을 만드는 것은 결국 사람과 시스템이다. 그런데도 수천억 원의 막대한 재정을 투입해 새 병원을 짓는 일이 마치 모든 문제를 해결할 만능 처방처럼 포장되고 있다면, 이는 시민과 도민을 너무 쉽게 보는 행정이다. 낡은 건물이 문제라면 왜 환자가 줄었는지부터 설명해야 한다. 의료진이 부족하다면 왜 좋은 의료진이 오지 않는지 밝혀야 한다. 적자가 문제라면 왜 적자가 반복되는지 원인을 공개해야 한다. 지역의 필수의료가 위기라면 안동의료원이 앞으로 어떤 진료를 책임질 것인지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근본적인 질문에는 제대로 답하지 않은 채 “이전”, “신축”, “246병상”, “수천억 원” 같은 숫자만 앞세운다면, 이것은 의료정책이 아니라 토목사업의 언어에 가깝다. 공공병원을 살리겠다는 것인지, 아니면 공공병원 건물을 새로 짓겠다는 것인지부터 분명히 해야 한다. 적자 병원의 문제를 새 건물로 덮을 수는 없다 안동의료원의 가장 큰 문제는 벽이 낡았다는 사실이 아니다. 병원이 지속 가능한 구조를 갖추고 있느냐는 것이다. 새 건물에 최신 장비를 들여놓는다고 환자가 저절로 몰려오는가? 아니다.
환자는 건물을 보고 병원을 선택하지 않는다. 믿을 수 있는 의사가 있는지, 진료를 제대로 받을 수 있는지, 응급상황에서 생명을 맡길 수 있는지, 필요한 진료과가 갖춰져 있는지를 보고 병원을 찾는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의료진 확보와 진료 경쟁력 강화, 필수의료 체계 구축에 대한 답은 흐릿한데 건물 이야기만 요란하다면 이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병원의 본질은 건물이 아니라 의료다. 이 너무나 당연한 사실을 잊고 있는 것은 아닌가. 공공병원의 적자는 어느 정도 감수할 수 있다.
공공의료는 수익만으로 평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공성은 무능과 비효율을 면죄부로 주는 단어가 아니다. 적자가 나면 왜 적자가 났는지 분석해야 한다. 인력 운영에 문제가 있다면 고쳐야 한다. 진료과 구조가 지역 수요와 맞지 않는다면 재편해야 한다. 민간병원과 경쟁할 분야와 공공병원이 반드시 맡아야 할 분야를 구분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고민 없이 “공공병원이니까 적자는 어쩔 수 없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공공의료가 아니라 무책임한 방만 운영을 공공성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는 것일 뿐이다.
새 병원을 지으면 원도심의 환자는 어디로 가는가?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전이다. 병원을 신도시로 옮기는 것이 정말 지역 주민에게 더 나은 의료를 제공하는 길인지 냉정하게 따져봐야 한다. 특히 기존 병원을 이용해 온 고령층과 취약계층에게 병원의 위치는 단순한 주소가 아니다. 병원까지 가는 버스가 있는가. 응급환자가 신속하게 도착할 수 있는가. 교통이 불편한 노인들이 쉽게 이용할 수 있는가. 원도심 주민들의 의료 접근성은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
새 병원을 지은 뒤에도 적자가 계속되면 누가 책임질 것인가. 이 질문에 명확하게 답할 수 있어야 한다. 수천억 원을 들여 병원을 새로 지었다. 그런데 몇 년 뒤 또다시 적자가 쌓인다. 환자는 기대만큼 늘지 않는다. 의료진은 부족하다. 운영비는 계속 증가한다. 그러면 또다시 “공공의료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말할 것인가. 그리고 다시 도민의 세금을 투입할 것인가. 그렇다면 지금 추진하는 사업은 개혁이 아니라 미래의 적자를 예약하는 사업이 될 수도 있다.
공공재정은 누군가의 사유재산이 아니다. 도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낸 세금이다. 따라서 수천억 원을 투입하는 사업이라면 ‘얼마나 멋진 병원을 지을 것인가’보다 ‘10년 뒤에도 이 병원이 살아남을 수 있는가’를 먼저 물어야 한다. 그런데도 미래의 운영계획보다 건립계획이 앞서고, 의료인력 확보보다 병상 숫자가 먼저 나오고, 경영 정상화보다 신축 청사진이 앞선다면 시민들이 의심하는 것은 당연하다. 혹시 우리는 병원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건설사업을 살리려는 것은 아닌가. 이제는 보여주기식 행정을 끝내야 한다 안동의료원을 둘러싼 문제는 단순히 한 병원의 문제가 아니다.
낡은 사고방식과 무책임한 행정부터 뜯어고치는 일이다. 수천억 원짜리 건물을 짓고도 병원이 살아나지 않는다면, 그때는 누가 책임질 것인가. 이제 그 답부터 내놓아야 한다. 그것이 도민의 세금 앞에 서 있는 행정이 져야 할 최소한의 책임이다. <저작권자 ⓒ 다경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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