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에 사는 대감 고사홍은 촬영지, 지리산 함양 일두고택은 면암 최익현 선생을 모델로, 순국지사 송병선 선생과 호남 의병장 기우만 선생 등등 당시 항일의병을 선도했던 선비들의 저항과 활동을 집약 표출시킨 것 같다. 끝까지 고사홍 대감을 지키는 전라도 출신 행랑아범과 손녀 고애신을 곁에서 지켜주고 있는 경상도 출신 함안댁은 최익현을 따르던 영호남 선비들과 의병들을 상징한 것 같다.
작가의 정확한 의중을 알 수는 없지만, 나라가 망하던 구한말의 역사를 압축하여 재현하고 있는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을 눈여겨보고 있는 시청자의 한 사람으로,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의 역할과 배경이 된 장면들을 분석해 보면, 감회가 남다르고 기막힌 연출에 탄성이 절로난다. 섬진강 유역 항일의병과 독립운동을 연구하고 있는 촌부가 당시의 역사를 바탕으로,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등장인물들과 배경들을 나름대로 추측해 보면, 다음과 같은 결론이 난다.
부연하면 최후까지 최익현을 지킨 임병찬(전북옥구), 고석진(전북 고창), 김기술(전북 정읍), 문달환(전남 화순), 임현주(전북 남원), 유종규(전북 김제), 조우식(전남 곡성), 조영선(전남 곡성), 나기덕(경남 통영), 이용선, 유해용(경기 양주), 최제학(경남 하동) 등 12제자들 대부분이 호남인들이다. 최후 12인 제자들 가운데 섬진강 유역 의병들이 4명이라는 것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의병대장 황은산과 장포수 그리고 처참한 죽임을 당하는 장면으로 시청자들을 울려버린 주모 홍파는 당시 의병들이 열악한 상황을 어떻게 극복하며, 일제에 저항했는지를 재현하여 보여주는 것 같다.
총을 들어 요인들을 암살하는 고사홍의 손녀이자 명사수 고애신은 당시 매국노들과 일본 고관들을 암살하는 단체를 조직하고 활동했던 고제신 선생 등의 활동을 재조명하는 의미로, 이름을 그렇게 짓고 역할을 하게 하는 것 다. 고종황제의 충복인 이정문 대감은 해관 윤용구 선생을 모델로 하여, 당시 고종과 조정의 충신들이 어떻게 움직였는지를 고증한 것 같다. 이완익은 이완용을 축으로 하는 반민족 친일 매국노들이 무슨 짓을 어떻게 했고, 어떻게 나라를 팔아먹었는지를 보여주는 것 같다.
지리산 천은사에서 촬영된 고사홍 대감의 49재 날의 전투는 1907년 10월 일제 군경의 대대적인 의병 토벌 작전으로 인해 지리산 연곡사에서 전사한 고광순 선생과 의병들의 전투를 고증하여 재현한 것 같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의미 깊은 장면 하나는, 작가가 보제루(普濟樓)의 의미를 분명하게 알고 재현한 것인지, 또는 연출하는 PD가 극적인 좋은 화면을 잡기 위해 연출한 단순한 장면인지 알 수는 없지만, 고사홍의 49재를 지내는 날, 절촬영, 지리산 천은사에서 벌어지는 전투장면에서, 고애신이 보제루 용마루 중앙에 등장하여, 의병들과 함께 일군들을 전멸시키고, 사람들을 구하는 장면은 압권이다.
마치 난세에 빠진 세상을 구하려 강림하신 천신(天神)처럼, 널리 세상의 모든 일체중생들 즉 모든 생명들을 차별 없이 모두 제도한다는, 깊고 자비로운 의미를 가진 보제루 지붕 용마루 중앙에 우뚝 등장하는 고애신의 장면은, 작가와 연출가가 보제루의 의미를 알고 연출한 것이라면 전율할 일이고, 모르고 연출했다 하여도, 보는 시청자들에게 강력하고 후련한 복수로 환호하며 탄성을 지르게 하는 장면이었다. 4회를 남기고 있는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결말이 어떻게 날지 알 수는 없다.
드라마를 시청한 사람들에게, 이 가을 지리산 천은사 수홍루를 거닐어보고, 극락보전 앞에서 보제루 용마루를 바라보며, 드라마의 주인공이 되어 보기를 권한다. 끝으로 고애신과 김희성이 이별을 하는 천은사 수홍루는, 개인적으로 아주 오래전 어느 겨울날, 멀리 바다를 건너 찾아온 아름다운 미인을 모시고 찾아갔다가, 특별한 추억을 만들어놓고 온 장소다. 그러니까 대략 30여 년 전 80년대 초 겨울 어느 날, 산천에는 전날에 내린 눈이 하얗게 쌓여 있다.
하늘의 보름달이 등불처럼 고목나무에 걸린 환상적인 수홍루에서, 멀리서 젊은 나를 사모하여 찾아온 아름다운 미인이, 내가 정신을 잃고 혼절하여버릴 정도로, 뜨거운 입맞춤을 해주고 떠나간 곳인데, 지금 생각해도 되살아나는 그 시절의 기억이 간질거리며, 새삼스럽기만 하다. <저작권자 ⓒ 다경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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