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정주 칼럼] 게으름 부리면서 살기로 한 그이

전정주 경북로스쿨교수

김형기기자 | 기사입력 2018/12/28 [18:21]
▲ 전정주 경북로스쿨교수   

일요일이면 나는 집을 나와서 찾아 가는 곳이 있다 시간에 맞게 가면 자리를 잡을 수 있고 일찍 가면 목 좋은 자리에 앉을 수 있는 곳이다 늦게 가면 자리와 자리 사이의 맨바닥에 앉게도 된다.

 

더 늦기라도 하는 날에는 계단에 앉을 수도 있고 오가는 이 있을 때마다 일어섰다 앉기를 반복해야 한다 한참을 늦으면 들어갈 수도 없고 문밖에서 안의 연사의 목소리만 듣다가 오는 수도 있다.

 

명당자리는 30분만 일찍 부지런하면 언제든지 차지할 수 있는 곳인데 행사를 마칠 때까지  해피엔딩은 물론 힐링까지 보장되는 곳이다.

 

그런데 내가 알고 있는 그이는 이제 한 달에 두세 번씩 30분 게으르거나 꾸물대며 살기로 했노라고 나직이 말해준다 그래도 계단에는 앉을 수 있을 거라고 하면서 말이다.

 

물론 그이도 처음부터 게으름피우기로 한 건 아니다 처음에는 부지런히 30분 일찍 도착하기를 장마철에 비 오듯 했다는 거다 무대의 연사도 잘 보일뿐더러 마이크 소리도 적당하고 가끔씩 바깥을 내다볼 수 있을 만큼의 창이 보이는 자리는 언제나 그이 차지라는 이야기도 해 준다.

 

그러다가 어느 날엔가 늦게 도착한 적이 있는데 들어가지도 못하고 문밖에서 강연을 들어야 하거나 계단에서 들어야 하는 때가 있었는데 그럴 때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단다.

 

지금까지 부지런하여 일찍 왔다는 이유로 내가 좋은 자리 앉아서 누린 힐링과 나의 호사는 단지 좀 늦었다는 이유로 계단이나 문밖에서 들어야 했던 이이들의 고통과 바꾼 거가 아닌가 하는 생각 말이다.

 

그러면서 그때 문밖에서 생각한 게 있는데 그게 바로 30분씩만 게을러져 늦게 도착해 보자라는 것이란다.

 

일찍 와서 좋은 자리 앉았다가  혹 힘든 이가 앞에 나타나서 신호를 보낼 때 그때 벌떡 일어나서 선뜻 앉았던 저리를  내어 주는 방법도 있지 않은가 하는 필자의 말에 좋은 자리 앉을 타인의 기회를 빼앗는 일이 되기 때문에 그렇게는 안 되겠다는 그이다.

 

본래 내 자리도 아닌 것을 가지고 도덕을 실천하듯 하는 것도 좋지 않고 상대가 고마워할 수도 있겠으나 때로 마음에 미안감을 가질까 봐 그렇기도 하고 제일 큰 건 스스로 그이의 마음에 불편함이 남을지도 모른다는 이유로 자리 잡았다가 내주기보다는 게으름피우면서 도착하기로 한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사실 우리가 몸은 힘들어도 마음은 즐겁다는 말들을 가끔씩 들으면서 혹은 하면서 살아가는데 그런 것 중 하나가 이런 거가 아닐까 싶다.

 

그이의 말을 들으면서 필자는 이런 생각올 하게 된다 물질이 아니더라도 혹은 특별한 재능을 가진 게 아니라 할지라도 함께 나눌 수 있는 것 중에는 이런 것도 있구나 하는 거 말이다.

 

그런데 물질이나 재능이나 몸으로 나누는 건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지만 사람들은 그이의 예처럼 “게으름을 통한 나눔” 이런 걸 잘 하는 것 같지는 않다. 필자의 둔감일지는 몰라도 말이다.

 

나누는 데는 이런 벙법도 있다는 걸 몰라서인지 아니면 알고 있다 해도 실천하기가 어려워서인지 아니면 실천에 비해서 사회가 그 가치를 제대로  평가해주지 않아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그이는 말한다 한 번 왔다 가는 거라면 따뜻한 사람이라는 소리는 못 듣더라도 같은 공간에 머무르는 동시대인들에게 차가운 사람은 아니네라는 소리 정도는 듣고 가면 좋겠다는 생각은 해 보게 된다고

 

그러면서 첫눈은 해마다 와도 되겠지만 첫 키스는 평생에 한 번이면 좋겠듯이 이 마음도 흔들릴 줄 모르는 한 번이면 좋겠다 그것뿐이라는 그이.

 

나중에 양명학의 대가가 된 왕수인은 12살 때 폐월산방이라는 시에서 작은 눈으로 보면 달은 작고 산이 크지만 큰 눈으로 보면 달은 크고 산이 작다는 걸 금방 알게 될 텐데도 사람들은 “큰 눈”으로 보려 하지 않고 눈앞의 것으로만 보려 하고 눈앞의 잣대로만 판단하려 한다고 적고 있다

 

나는 오늘 500여 년 전의 12살 왕수인 앞에서 얼마나 부끄러워하고 있는가를 생각하게 된다.

 

우스개로 하는 소리이겠으나 여학생들은 말한다 남녀동학이 좋은 이유는 딱 한 가지란다 내신등급에서 여학생들이 높은 등급을 받을 수 있다는 것 때문이란다  그 이유는 공부 못 하는 남학생들이 밑에서 받쳐주니까.
 
어쩌면 이 남학생들도 위에서 말하는 게으르게 살기로 한 것 그런 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도 해 보게 된다 “큰 눈”으로 바라보면서 말이다.

 

누구는 뒤에 서고 누구는 엎어지고 그러면서 너도 가고 나도 가고 우리는 간다 그렇지만 엎어지고 뒤에 서는 이들도 위의 게으르게 살기로 한 그이를 닮아서 그런 건 아닌지 우리는 생각해 보아야 한다.

 

한 달에 두세 번씩 30분 게으르기로 했다는 그이가 실제로도 눈이 크고 순한 얼굴이지만  진짜 “큰 눈”을 가진 것이 아니겠는가 한다 왕수인이 말하는 그 “큰 눈”을 가진 이 말이다.

 

그때 뜨거운 여름날 밀짚모자에 태양도 가려 보았고 산포도처녀가 따주던 산포도 맛도 기억한다 세월은 앙상한 나목이 떨고 있는 세모를 남기고 지금 그이와 나는 또 한 번 산포도처녀를 기다리는지도 모르겠다.

 

전정주 경북로스쿨교수

언제 어디서나 최대의 적은 자기 자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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