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관의 받음 마음] 그리스도인의 행복과 복!

다경뉴스 | 기사입력 2019/04/13 [10:06]
▲ 이관 선생

나는 벌써 행복하고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성경 말씀에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로 받는 사람의 행복에 대하여, 그 불법을 사하심을 받고 그 죄를 가리우심을 받는 자는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치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 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제4장 5절-8절 ; 일을 아니할찌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5절.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행복에 대하여 다윗이 말한바-6절. 그 불법을 사하심을 받고 그 죄를 가리우심을 받는 자는 복이 있고-7절. 주께서 그 죄를 인정치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함과 같으니라-8절.)

 

여러 번 반복하여 말씀드리지만 성경을 읽을 때 하나님이 나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받아들이는 마음이 중요합니다. 분명하게 불법을 사하심을 받고 그 죄를 가리우심을 받은 자는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불법을 사하심을 받고” 라는 전제(조건)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불법을 사하심을 받는 것인가?


이미 예수님께서 이루어 놓으신 것을 마음으로 받아들여 믿기만 하면 됩니다. 내가 행위로 할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내가 무엇을 해서 불법이나 죄를 해결 할 방법은 결단코 없습니다. 자기가 하려 하다 보니 도저히 불가능함을 알게 되고 자기기준 자기고집에 자기지식에 메여 다들 죄인이라 합니다.

 

왜? 신앙을 한다면서 교회에 다니면서 성경말씀을 따르지 못하고 사람들은 자기를 보고 다 죄인이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무엇 때문에 자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죄의 종노릇을 하는 것일까요? 죄를 짓기 때문에 혹은 우리는 우리 속에서 나오는 것이 항상 악하기 때문에 죄인일 수밖에 없다. 라고 생각하게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피 흘려 돌아가신 공로로 세상 죄를 씻어 놓으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받아들여 믿기만 하면 되는데 자기 기준 세상의 일반적인 상식으로 죄인으로 남기를 고집하며 지옥가기를 자청해야 합니까? 다시 한 번 반복하면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 못 막히셔서 우리의 모든 죄를 사했다고 분명하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시는 구원의 역사에 인간이 손을 대면 망쳐버립니다. 구원은 예수님만이 이루어야 합니다. 우리의 선(善), 우리의 노력(努力), 우리 수고, 그것을 보태려고 하면 큰일입니다. 그냥 주님이 완벽하게 이루어 주신 것을 믿고 “의롭다” 고 하면 “의롭다고 했네요. 아멘”하고 받아들어야 합니다.

 

여기서 주님이 주시는 마음으로 옮겨 살면 주님이 마음 안에서 일을 하십니다. 사랑하는 마음을 줍니다. 주님은 사랑이시기에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 않게 합니다. 가끔 우린 사탄의 유혹에 넘어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대하면 금방 돌이키게 되고 그 돌이키게 이끄시는 주님께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됩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구원(救援)을 받았지만 주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못하는 이유는 자기의 생각이 작용되기 때문입니다. 우리 안에 예수님을 모시고 살면서 한편으로 자기가 주인 노릇한다면 예수님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구원받은 자는 이것만은 확증합시다. 우리의 주인은 주님이십니다.

 

하나님(예수님)이 세상(나를)을 이처럼 사랑하사(내 지옥 갈 죄를 위해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 독생자(예수)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죄에서 구원할 자(마1;21)를 믿는 자 마다 영생(천국에서 영원히 사는 것)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한복음 제3장 16절)


“나를 버려야” 나를 남겨 놓고는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주님의 말씀으로 살아야합니다. 내게 있고 없고가 문제가 아니고 만물은 마음 안에서 다스릴 수 있습니다. 마음이 굳어져 있다는 것은 죽은 것입니다. 신앙은 실제의 삶입니다. 생각(허상)의 삶은 무겁지만 예수님이 감당하는 삶이어야 가볍습니다. 사람이기에 하나님의 형상을 나타내고 싶어 한다고? 하나님이 지어주신 이름이 사람입니다. 내 인생이 내 것이다. 는 저주입니다. 너는 내(하나님)것이다. 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것으로 사는 것이 의인입니다. 내 이름이 아니라 예수님으로 복을 받는다. 의롭다. 입니다.

 

“하나님의 힘으로 사는 삶이 되어야” 아브람에서 아브라함처럼 하나님 한 분이면 충분한 삶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신앙에 감각이 오는 세계가 하나님의 세계입니다. 근거가 내게 있으면 문제이지만 하나님께 있다면 문제가 될 것이 없습니다. 말씀 앞에 불신은 사단의 역사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예수님을 주셨습니다. 내 옳은 생각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뒤 엎지 말아야 합니다.

 

정녕 내 영혼을 위해 성경을 보고 있는가? 물어 봅니다.

 

말씀에 의지하는 삶이냐? 내게 목자가 없다는 것은 자기(내)가 살아 있다는 것입니다. 말씀은 법이 아니라 “길이요, 영이요, 생명입니다” 모든 걸 내려놓는 삶, 마음의 흔적이 없는 삶입니다. 가끔 성공담을 이야기 하지만 신앙의 세계에서 성공은 성공이 아니고 마음을 높게 하는 일이 되고 네게 찾아올 새로운 힘을 거부하게 됩니다. 하나님으로 이루어져야 자유로워집니다. 양심과 말씀에서 내가 끝나고 말씀(예수님)만이 세워져야 구원이고 참 삶입니다. 축복은 말씀이 일하는 세계입니다.

 

말씀을 말씀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말씀이 절대적으로 나의 것이 되는 경우, 삶 속에서 이것이 나의 길이라 여겨질 때 은혜요 길이요 잡아야 하는 삶입니다. 마지못해 하는 신앙? 관념적인 신앙은 죽은 삶입니다. 말씀을 삶 속에 적응하고 관념과 생각이 깨져야 합니다. 믿음이 없다는 기준은 믿는다고 하면서 불신하는 마음으로 형편에 굴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맺어진 관계” 얼마나 귀하고 값진 것인가를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임마누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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