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관 칼럼] 진리의 말씀을 믿는 참 신앙인의 길

하나님 말씀만을 믿음으로 받아들어야 참 신앙인이다.

장성각기자 | 기사입력 2019/06/12 [18:15]
▲ 이관 칼럼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 중 상당수의 사람들이 “마음에 죄가 있지만”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천국에 갈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이런 믿음은 성경적으로는 절대로 맞지 않기에 말씀(성경)만으로 증거 하려 합니다.

 

교회에 다니면서 구원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오해하고 혼돈 하는 부분이 바로 이 부분이다. 예수님은 분명히 죄에서 우리를 구원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공로를 믿지 않는 것과 같다. 어떻게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마음속에 죄를 가지고 있는 자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일까? 그것은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란 기준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로리(R. Lowry)가 작사 작곡한 찬송가 343장에 보면 울어도 못하네, 힘써도 못하네, 참아도 못하네, 믿으면 하겠네 하는 기사가 나옵니다. 우는 것과, 힘쓰는 것, 참는 것이 신앙일 수 없고 말씀만을 믿는 것만이 신앙(그리스도인)이란 것이다. 그런데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 중 상당수가 하나님을 위하여 열심을 내는 것이나 율법을 따라 착하게 사는 것을 믿음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처럼 믿음이 아닌 것을 믿음으로 여기고 있기에 참된 믿음과는 상관이 없는 가운데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정통신앙인이라고 자부하는 사람들 중에서 분명히 자기들의 주장이 성경적이지 아닌 점을 알면서도 자기들이 주장하는 교리를 바른 믿음으로 고집하기에 마음이 말씀 앞에 여리고 성처럼 굳게 닫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참 많은 사람들이 성경적으로 바르지 않는 믿음을 참 믿음으로 여기고 있다. 그들이 갖고 있는 그릇된 믿음 중 하나가 바로 “비록 죄가 있지만 예수를 믿기에 천국에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정말 마음에 죄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예수를 믿고 있다는 생각이 바른 믿음일까?

 

사도 바울은 너희가 믿음이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 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고후 제13장 5절)고 권하고 있다. 성경만이 믿음을 정확히 풀 수 있는 잣대이며 신앙을 바로 잡아줄 수 있는 참된 기준이다.

 

성경의 모든 말씀은 서로 짝이 있어 말씀을 받은 사람의 마음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바로 잡아 준다. 그러므로 자신이 가지고 있는 믿음이 바른 믿음인지는 성경에 비춰보아야 한다. 만일 성경적으로 잘못된 믿음이라면 결국 버려진 자가 되어 영원한 형벌을 받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성경의 몇몇 구절만 가지고 믿음을 확증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그들은 나름대로 성경(말씀)을 통해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에 모순된 믿음이면서도 자신들의 주장을 잘 내려놓지 않는다. 그들 중 한 부류는 “예수님을 믿지만 죄인이다”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다. 그들은 대부분이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롬 제3장 10절)라는 말씀만을 그 믿음의 근거로 하고 있다. 성경 여러 곳에 나오는 의인에 관한 말씀은 외면하고 즉 성경의 전체적인 맥락에 비추어 자기 믿음을 시험하거나 확증하지 않고 자기 마음에 맞는 말씀만 붙들고 있다.

 

또 어떤 사람은 “예수 이름을 부르는 것 자체가 믿음이고 구원인데” 뭐 그렇게 꼬치꼬치 따지느냐? 라고 반문 한다. 그들 역시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롬10:13)는 말씀만 의지할 뿐 나 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가는 것이 아니요(마태복음 제 7장 21절)라는 말씀에는 관심이 없다.

 

성경은 성경으로 풀기 때문에 말씀을 하신 하나님의 마음과 그 말씀의 앞 뒤 문맥 그리고 관련된 말씀을 자세히 살펴보아야 한다. 어떤 구절만 가지고 자신의 믿음을 확정하려한다면 그릇될 수밖에 없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 역시 어느 한 부분만 가지고는 확증할 수 없다. 민수기21장 모세가 광야에서 놋뱀을 든 이야기나, 출애굽기12장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와 안방에 바른 이야기를 살펴보면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이는 저를 믿는 자 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한복음 제3장 14절-15절).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원망함으로 불뱀에 물리게 되자 모세가 그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백성의 원함대로 불뱀을 제거하신 것이 아니라 놋뱀을 처다 보도록 하셨습니다. 상식적으로는 뱀의 독을 빨아내거나 뱀을 쫓아내는 것이 아닌 하나님의 방법은 달랐다.


여기서 불뱀은 죄를 의미하고 놋뱀은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 한다​. 뱀에게 물린 사람은 더 이상 물리지 않으려고 노력해야 되는 것이 아니라 놋뱀을 바라봐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이미 죄를 범한 사람들은 죄를 짓지 않으려고 하기 전에 예수님을 바라봐야 된다는 것이다. 유월절의 어린양도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고전 제5장 7절) 유월절의 심판을 어린양이 막았듯이 죄로 인한 심판을 막은 표적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죄”와 “심판”을 해결하신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마음에 여전히 죄가 남아 있다면 뭔가 문제가 있는 것이다. 즉 그리스도를 믿는 참된 믿음은 그리스도께서 모든 죄를 해결해 놓으셔서 죄가 없는 상태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로마서 제10장 13절)라는 말씀도 앞 뒤 문맥을 살펴보면 단순히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구원을 얻는다는 내용이 아니다. 그 뒤에 나오는 내용을 살펴보면 예수님을 부르기 전에 먼저 믿음이 와야 하고, 믿음은 말씀을 들음으로 오는 것이며 말씀을 전파하는 자로 말미암는 것이다. 예수님을 시인하기에 앞서 믿음이, 믿음에 앞서 들음이, 들음에 앞서 전파하는 자가 와야 된다.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로마서 제10장 10절)그런데 마음으로 믿는 결과는 마음이 의에 이르렀느냐? 즉 죄가 없는 상태가 되었느냐? 라는 사실을 통해 알 수 있다. 마음이 의에 이르지 않았다면 입으로 시인해도 구원에 이른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참 믿음과 거짓된 믿음의 기준이 되는 것은 무엇일까?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딤후 제3장 15절) 믿음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자기 기준에 의해 확신하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하나님이라고 믿고 제사를 드리는 것과 일반이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를 향해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딤후1:5)고 했다. 즉 믿음은 자기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사람들에게 있는 믿음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 믿음이 살아 있는 믿음이다.

 

야고보는 하나님이 하시고 이룰 것을 믿는 마음인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드릴 때에 행함 즉 하나님이 하신 약속을 믿는 믿음 안에서 주님이 이루실 것을 믿는 믿음이 참 믿음임을 강조했다. 눈에 보이기 위해 억지로 자기의 의지에 따른 몸으로 말만 하는 것은 거짓된 믿음이요 죽은 믿음이다.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 형제자매들에게 보낸 편지를 통 해서 더욱 분명히 알 수 있다. “우리 복음이 말로만 너희에게 이른 것이 아니라 오직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이니”(살전1:3) 말과 함께 능력이 따른 믿음이라야만 참 믿음인 것이다.

 

예수님을 믿으면 죄가 씻겨 진다. 예수님을 믿기에 죄를 용서 받았다고 하면서 마음에는 그래도 나는 죄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말뿐인 죽은 믿음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주일 성수를 하고 십일조와 헌금을 잘 내며 많은 봉사와 구제를 하더라도 마음에 죄가 있다면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원죄는 예수님이 씻으셨지만 자범죄는 매일 회개해야 된다고 믿는데 그것 역시 온전한 믿음이 아니다. 그렇게 매일 회개해서 죄를 씻을 수 있다면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실 필요가 없었다.


그러면 예수님을 믿는 참된 믿음은 어떻게 얻을 수 있을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다 사하셨다는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임으로 믿음을 얻을 수 있다. 성경은 여러 곳에서 예수님의 속제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레17:11)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히10:12)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회개 기도를 하면 죄가 씻겨 진다 믿고 있는데 그것은 성경적으로는 있을 수 없는 잘못된 것이다.


죄의 삯은 사망​(死亡)이고 사망은 생명(生命)을 지불하는 것이다.  그런데 생명은 피에 있으므로 오직 피만이 죄를 속할 수 있다. “율법을 좆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 흘림이 없는 즉 사함이 없느니라.”(히9:22) 그래서 구약시대에는 염소와 양의 피로 속죄 제사를 드림으로 죄를 해결했다. 그러나 그것은 늘 반복되는 불완전한 제사로서 “그리스도의 영원한 속죄에 대한 모형”일 뿐이었다.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짊어지신 후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위해 당신의 피를 흘리셨고 마지막으로 죄 사함을 “다 이루었다”(요;19장 30절)하시고 돌아가셨다. ​그 후 하나님은 우리에게 새로운 말씀을 하셨다. “저희 죄와 저희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치 아니하리라. 이것을 사 하셨은 즉 다시 위하여 제사드릴 것이 없느니라" (히;10장17절-18절) 이 약속을 믿는 사람의 마음에는 죄가 남아 있을 수 없다. 만일 마음에 죄가 남아 있다면 예수님이 모든 죄를 사하셨다는 말씀은 그 마음에 새겨져 있지 않은 것이다. 마음에 죄가 있다면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를 믿는다면 죄가 없어야 한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롬8:1) 이 말씀처럼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의 사람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기 때문이다.

 

믿음의 시작은 “죄에 대한 온전한 해방”에서 시작된다. 그때 기쁜 날 기쁜 날 주 나의 죄 다 씻은 날(찬209)찬송을 마음으로 부를 수 있다. 결론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속죄를 깨달음으로 마음이 정죄에서 벗어나 의에 이른 사람만이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갖고 있는 것이다.

 

(요 16:9) 죄에 대하여라 함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하나님은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시55:7)고 말씀 하셨다. 마음에 의가 없는 불의한 사람은 그 생각, 곧 잘못된 믿음을 버리고 당신의 말씀 앞에 나오기를 바라고 있다. ​그때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온전한 죄 사함의 믿음을 허락해 주신다. 머리로 하는 신앙, 지식으로 하는 신앙이 아니라 마음으로 하는 신앙, 은혜로 하는 신앙이 되도록 이끌어 주시옵소서.

 

끝으로 하나님의 세계는 시간계가 아니라 영원계(처음과 끝)이다.

예수님은 영원한 제사의 흠이 없는 속죄양이시다.

희망은 볼 수 없는 것을 보고, 만져질 수 없는 것을 느끼고, 불가능한 것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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