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신앙은 우리를 하나님께 맡겨야!

나경희기자 | 기사입력 2019/11/08 [04:06]

이사야 제55장 8절에서-9절까지.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이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이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 사진설명=이관 선생

하나님은 말씀으로 이루신다. 말씀을 믿고 받아들이는 것이 신앙이다. 들을 마음이 있는가? 믿음은 바라는 것의 실상이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말씀과 내 생각을 구분하는 힘이 있는가?

 

근래에는 종교가 되어버린 적당히 타협하려는 신앙인이 많음을 본다. 교회에 다니면서 믿음으로 살려는 마음이 아니라 그냥 형식화된 주일 지키기에 종교화된 신앙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교회에 나오는 것으로, 주일을 지키는 것으로 막연하게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다고 믿는 것이 옳은 신앙인일까 잘 생각해 보아야 한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과 멀어져 그저 막연함에 중독이 되어있음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다.

 

성경말씀에 하나님이 만드신 최초의 인간인 아담에게 하나님께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하신 말씀을 어기고 선악과를 따서 먹음으로 죄인이 되었고 영적으로 하나님과 단절(죽음)된 아담의 후손이기에 우리는 태어나면서 죄인이고 영적으로도 하나님과 동떨어진 죽음자이기에 우리가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의 종(목사)의 인도를 받음으로 하나님께서 영원히 인간을 사랑하시는 증거로 죄의 삯인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의 은혜를 통하여 값없이 죄에서 벗어나는 진리를 알게 되었다.

 

성경말씀에 세상에서 죄를 씻고 하늘나라에 가는 길은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서 흘리신 보혈의 공로밖에는 없다.

 

그러나 어느 날부터 시작이 된지는 모르나 많은 사람들이 성경말씀과 다른 자기가 열심히 노력함으로 죄에서 벗어나서 하늘나라 가겠다는 인간적임 방법에 집착하여 종교가 되는 타락의 길로 들어서고 만 것을 본다.  어쩌면 성경말씀에 의하지 않고 지역에 따라 전통적으로 내려온 전례에 따른 타 종교 및 토속신앙의 영향을 받아 자기가 열심히 기도하고 물질적으로 바쳐야 하는 것이 신앙으로 변질 마음으로 순종하게 되면서 참 진리인 예수님이 주인인 영적인 세계가 아니라 자기의 행위를 중요시 하는 사단의 유혹에 넘어가 성경말씀과 다른 타성이 젖어 신앙이 아닌 종교생활이 되고 있다.

 

창세기 제4장에서 최초의 인간아담이 낳은 첫째아들 가인과 둘째아들 아벨이 세월이 지난 후에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예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둘째 아들 아벨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하였으나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심히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라고 쓰여 있다. 왜? 여호와께서 가인은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였을까? 그 의미를 새겨보아야 한다.

 

하나님은 당신이 주신 것만으로 다시 말해 우리들에게 예수님만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나아오라는 뜻을 의미한다는 창세기부터 예수님을 예시하고 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결단코 인간적인 우리의 방법으로 신앙을 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만을 의지하는 마음으로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이 참 신앙임을 가르쳐주고 있다.

 

기독교 신앙은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이 하신다는 자체의 믿음이다. 믿음에서 시작되는 신앙, 예수님만을 의지하는 삶이 참 신앙인이다. 왜? 하나님만을 의지하려는 믿음이 중간에 자기가 주인이 되고 자기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쪽으로 마음이 옮겨져서 자기가 부인되지 아니하는 자기 행위가 주인이 되는 열심이라는 엉터리가 도리어 옳음으로 여겨지는지? 하나님만을 찾지 않는 사람들의 신앙은 과연 어떤 마음인지? 머리로 지식으로 하는 신앙은 참 신앙이 아님을 우리가 깨달아야 한다.

 

어떻게 우리의 생각과 지식이 하나님께 비유가 될 수 있는가! 보통 대개의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믿고 신앙을 하려고 하는데 성경은 과연 일반적인 상식으로 통하는 세계가 아니다. ​창세기부터 잘 설명이 되어있다. 하나님이 창조한 세계이다. 하나님이 말씀으로 만드신 세계에 대하여 믿고 따르는 것이 참 신앙이다.

 

성경말씀은 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로 시작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세계가 아니다. ​우리가 하는 행위가 아니라 이루어 놓은 것에 혜택을 입고 인간인 우리의 노력이 아니라 값없이 은혜를 입는 믿음의 세계가 참(眞) 신앙이다. 하나님의 세계는 시작이요 끝이다. 우리의 삶은 하나님의 세계 안에서의 지극히 짧은 순간이다.

 

​현대 사회는 정말 너무 복잡하여 3차원의 단계를 넘어 4차원의 세계를 향해 달려가는 세상인데 보이지 않는 세계, 상상할 수 없는 세계, 이 모두가 하나님의 영역 안이라는 점이다. ​성경말씀을 잠깐 찾아보며 말씀 속으로 여행을 하여보자. 성경만이 진실임을 전제해야 찬 신앙이고 진리임을 확신할 수 있다. 물질세계에 마음을 내어주면 인간적으로 타락인 것이다.

 

요한복음2장에 물이 포도주가 되고, 3절에는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6절에서 보여준 5병2어 기사 등 우리가 할 수 있는 세계가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17절에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이후21절 까지 말씀은 오직 예수님이 이루심을 나타내고 있음을 확증할 수 있다. 이 말씀을 받아들여 마음으로 승복하는가? 이 말씀을 믿고 받아들이는 것이 믿음이고 참 신앙인 것이다. 자기의 지식이나 경험은 아무런 값어치가 없고 전적으로 무시되어야 한다.

 

그러나 아담의 후손인 인간은 태어나면서 사단의 종이었기에 사단에 자기를 내어 주는 경우를 본다. 심지어 예수님의 제자이면서도 사단이 마음에 침범하니 제자중 하나인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팔아먹는 대표적인 예를 본다. 유다에게 사단이 들어가니 욕망에 눈이 멀어 사단에 놀아나는데 자기의 의지로 이기는 세계가 아니라 예수님만을 의지해야 했다면 그런 잘못을 범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의 힘으로는 마귀를 이길 수 없다. 욕망이란 사단이 예수를 팔아먹을 생각에 지배당하여 예수를 팔아버린 행위로 나타났고 뒤 늦게 유다에게 뉘우침이 찾아왔지만 자기를 제어하지 못한 자기 행위에 대한 가책으로 자살이라는 불행한 삶인 최악의 결과로 나타났다. 결국 자기 영혼에 대한 값어치를 계산할 줄 모르는 세계에 빠졌다.

 

가롯 유다가 예수를 판 상황을 더듬어 보면서 인간이 자기 각오로 무엇이던지 할 수 있는 자처럼 보이지만 인도를 받지 못하는 신앙은 절대로 완전할 수 없고 자기를 통제하지 못하는 신앙이라는 점을 보여주는데 예수그리스도만이 참이고 진실하다는 점을 마음에 담아야 할 일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찾을 수 있는 마음의 세계는 어떠한 것인가? 성경말씀을 믿고 그대로 따르는 자세가 첫 번째이고 형편과 상관없이 어떠한 경우이든지 따르는 것이 신앙이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기기준에 집착하여 하나님을 찾지 않는 사람은 신앙을 버리는 삶으로 타락이다.

 

성경말씀을 무조건 믿고 따르는 것이 신앙이다. 말씀(성경)을 가벼이 여기는 것들이 사단에 내어주는 생각이요 문제이다. 말씀이 내 생각을 이겨야 제대로 된 삶이고 신앙인의 참 모습이다. 우리는 관념을 바꿔야, 말씀에 젖을 수 있어야 은혜를 입는다. 죽음을 감각하지 못하는 평상시의 우리의 삶이 타락인 것이다.

 

형체가 유지하는 한정됨이라는 것이 인간적인 사고(思考)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성경적인 죽음을 이해하지 못한다. ​마음에서 성경말씀이 떠나는 것이 죽음이라는 점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복과 저주를 이해하지 못하는 인간의 정신세계! 축복과 저주. 냉정하게 예수님과 함께하는 것이 축복이다. 예수를 떠넌 것이 저주이다. 성경에서 에서의 후손이 에돔 족속으로 발전하는데 에서의 후손은 외형적으로 힘이 강함을 보여주지만 이 점이 인간적인 판단의 기준이다. 

 

야곱은 약하고 약하지만 요셉의 아비가 되는 위치에 있게 되었다. 하나님 자체가 힘이다(만능). 그렇다 어느 누구나 하나님만이 힘이 되어야 능력의 극대화이다. 마귀에게 마음을 내어주고서 생각하고 믿는다는 것은 벌써 죽음이다. 예수님이 하시는 일과 인간이 하는 일. 하나님의 일을 우리는 결코 할 수 없다. 하나님이 하셔 주어야 한다.

 

나를 맡겨야! 하나님의 일을 어찌 인간이 대신할 수 있겠는가. 우리의 일을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닌 하나님이 대신하여 주셨을 때 완전하다. 우리를 지켜줄 도구가 “철 병기”라고 믿는 마음의 실상은 무엇일까?

 

우리가 믿는 철 병기는? 돈이나 명예? 기타 세상적인 권력으로 우리를 만족시킬 수 있을까? 우리를 지킬 수 있을까? 허상을 의지하는 것으로 과연 어떤 것이 나를 지킬 수 있겠는가! 마음에도 결이 있다. 예수님이 죽음으로 자기를 드려져서 이루어 주신 은혜인 우리들에게 이루신 구원. 예수님의 희생이라는 값진 댓가가 인류의 구원이다. 죄악을 이긴 것이다.

 

하나님의 마음은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죄인과는 함께 할 수 없기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셔서 세상 죄를 지고 십자가에 몸소 피 흘리셔서 세상을 구원하셔서 율법의 요구를 다 들어주시고 다 이루셨다하시고 돌아가시고 우리를 의롭다 하기 위하여 3일만이 부활하셖고 그 후 하나님의 우편이 자리하고 계신다.

 

참된 신앙은 나를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것이고, 그 하나님은 나와 생각이 다르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이 내가 볼 때, 내 생각과는 다를 수밖에 없지만 하나님만이 영구불변의 진리인 것이다. ​그래서 그 말씀을 따르는 것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 우리의 삶을 맡기자! 천국이 나의 안식처이다.

나경희기자

우리가 존중해야 하는 것은 단순한 삶이 아니라 올바른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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